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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상식

키코(KIKO)를 통해 본 기업들의 환위험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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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는 70% 정도 됩니다. 무역의존도는 국내총생산에서 수출과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을 더한 값입니다. 결국 우리나라 대부분 기업들은 수출, 수입을 하고 이를 위한 외환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환율이 1,000원에서 1,100원으로 오르면 쉽게 '100원밖에 안 올랐네'라고 말할 수 있으나 비율로 따지면 10%가 오른 것입니다. 결국 수입기업의 수익은 10%나 떨어지게 됩니다. 기업이 순이익 10%를 올리기가 쉽지 않은데 가만히 있다가 10% 의 돈이 날아간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찔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환위험 관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럼 기업들은 환위험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가장 간단한 것은 금융 상품에 가입하면 됩니다. 은행과 선물계약을 해서 나중에 외환을 매도할지 매수할지를 정하면 됩니다. 은행은 수수료를 얻게 되고 기업들은 위험관리(헷지)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양말을 수출하는 기업이 양말을 팔아서 나중에 1만 달러를 받기로 되어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1달러의 1,000원인 환율이 나중에 떨어질 거라 예상해서 1달러에 1,000원에 팔 수 있는 권리(계약)를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은행으로부터 사들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기업은 환율이 더 떨어져도 손실은 수수료 금액밖에 되질 않습니다. 수입하는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1만 달러를 주고 양말 원단을 사 오기로 되어 있다면 원단을 받고 대금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만약 환율이 오를 거라 예상되면 기업은 1만 달러를 나중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은행으로부터 구입합니다. 환율이 예상대로 많이 올라도 그 기업은 수수료만큼의 손실만 보게 됩니다. 이때 외환을 특정시점에 팔 수 있는 권리를 선물환 매도 계약이라고 하고 살 수 있는 권리를 선물환 매수 계약이라고 합니다.

 

   2008년에는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있던 해입니다. 미국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대출을 못 갚게 되고 거기에서 파생된 금융상품도 못 갚게 되면서 금융회사들이 줄 도산을 하여 미국이 휘청거렸습니다. 결과는 우리나라 GDP 보다 많은 돈을 굴리던 유명한 금융회사 몇 군데가 망했지만 일부는 망했다가 미국인들의 세금으로 살아나기도 했죠. 그때 우리나라는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를 꾸역꾸역 헤쳐나갔는데 문제는 그때쯤 있었던 기업들의 흑자 도산이었습니다. 금융위기가 오기 바로 전 2007년 초까지는 전 세계가 호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환율은 2001년부터 2007년까지 꾸준히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미국에서 기준금리를 올리고 부동산이 폭락하고 금융위기가 오면서 환율이 급등하였습니다. 

 

환율-'통계청'

 

   이전까지 장사를 잘 해오던 수출기업들은 앞으로 환율이 더 떨어질 것을 걱정해서 일종의 선물환 매도 계약을 하게 됩니다. 바로 키코(KIKO)라는 것인데요. 어떤 기업이 나중에 받을 대금 1만달러를 은행에 1달러당 950원에 팔 수 있는 키코를 구입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1달러에 1,000원의 환율이 조금씩 떨어지면 그 환율로 환전을 해주고 만약 950원 이하로 떨어지거나 900원 이상이 되면 은행에서 950원으로 무조건 환전해줍니다. 그리고 900원 이하가 되면 계약이 없던 것이 됩니다. 문제는 환율이 오르는 경우인데요. 1,000원 이상이 되면 당일 환율과 계약환율 차액의 2배를 공제한 뒤 환전을 해줍니다. 예를 들어 만약 환율이 1,100원이 되었을 때 키코에 들지 않았다면 양말기업은 1,100원x1만 달러=1천1백만 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키코 계약은 (1,100-950)x1만 달러x2배=3백만 원을 공제한 금액 800만 원만 받을 수 있습니다. 환율이 급등하면 할 수록 피해금액은 늘어만 가게 됩니다. 결국 키코에서 은행은 유한한 리스크를 가지지만 기업은 무한한 리스크를 가지게 됩니다.

 

    2008년 당시 중소기업의 키코 피해금액이 2조 2400억이라고 합니다. 776개 기업이 키코에 가입하였고 110개 기업이 부도나 워크아웃되었다고 합니다. 계약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였다면 미국 부동산 거품이 갑자기 꺼져 환율이 급등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어도 사실 이런 계약에는 도장을 찍지 않는 게 정상일 것입니다. 아니면 무한한 리스크를 다시 헷지 할 수 있는 상품 가입이나 보험계약을 했어야 했습니다. 기업들은 은행에서 이를 확실히 알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당시 신용보증기금에서 환위험 관리 상품에 들지 않은 기업들에게 보증료 할인이나 가산점을 주지 않았다고 하니 많은 중소기업들이 자세한 확인 없이 분위기에 휩쓸려 가입한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하였습니다. 결국 키코 판결은 2013년에 대법원에서 나오게 되었는데요. 계약서는 문제가 없지만 계약과정에 리스크 부분을 확실히 얘기해주지 않았다면 은행이 책임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은행은 당시 피해액의 10~30%를 배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계약자체는 부당하지 않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이라는 공소시효가 지난 뒤 2017년에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을 통해 키코를 다시 조사하게 되었고 오늘자로 금감원에서 일부 소송하지 않은 키코 가입 기업체들에게 은행이 배상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은행 1곳 말고는 다른 은행들은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 기업들은 환위험관리에 더 적극적이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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